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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두려움만 가득한 일제 치하에서 지하 연락 활동을 한 오광심 선생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출생과 가족 :

오광심 선생은 191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오영택이고, 어머니는 김 씨였습니다. 오광심 선생은 4남 2녀 중 둘째 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중국 남만주로 이주하여 흥경현 왕 청문에 있는 화흥 중학 부설 사범과 에서 공부하였습니다.

 

1930년 김학규 선생과 결혼하였으며,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활동:

오광심 선생은 1931년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1935년 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으로, 1936년 대한민국 대국 부인회 간부로 활동하였습니다. 1940년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기밀 실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김학규 선생과 함께 초모, 선전, 파괴 등의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광복 후에는 상하이 주재 한국인들의 귀국을 도왔으며, 1948년 김학규 선생과 결혼하여 귀국하였습니다.

업적 :

오광심 선생은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일제 강점기에 끊임없이 민족의 자주 와 해방을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그녀는 조선혁명군 사령부에서 복무하면서 지하 연락 활동에 종사하였으며, 유격대 및 한중 연합 항일 전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학규 선생의 보고서를 통째로 외워 만주로 가서 구술로 이를 보고하는 등 위험천만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시를 통해 항일 의지와 애국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오광심 선생이 참여한 항일 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격대 활동 :

오광심 선생은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혁명군의 유격대로 활동하였습니다.

유격대는 일본군의 군사시설이나 철도, 전신선 등을 파괴하거나 공작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오광심 선생은 유격대의 여성 간부로서, 남편 김학규 선생과 함께 일본군을 탈영한 학도병들을 광복군으로 가담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중 연합 항일전 :

오광심 선생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한중연합 항일 전에 참여하였습니다. 한중 연합 항일 전은 중국의 공산주의 단체인 중국공산당과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협력하여 일본에 맞서는 전쟁을 의미합니다. 오광심 선생은 한중 연합 항일 전의 여성 간부로서, 김학규 선생과 함께 조선혁명군 사령부에서 복무하면서 지하 연락 활동에 종사하였습니다.

 

지하 연락 활동:

오광심 선생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지하 연락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지하 연락 활동은 일본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과 연락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오광심 선생은 남편 김학규 선생의 보고서를 통째로 외워 만주로 가서 구술로 이를 보고하는 등 위험천만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지하 연락 활동이란 일본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과 연락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지하 연락 활동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광복군이나 조선혁명군 등의 조직에서 주로 수행하였습니다.

지하 연락 활동은 위험도가 매우 높았으며,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면 체포, 고문, 처형 등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지하 연락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은 용감하고 헌신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오광심 선생은 자신의 시를 통해 항일 의지와 애국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녀의 시 중 하나인 《백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파

백파야 백파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너를 찾아 만주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너를 부르고 부르고 부르노라

백파야 백파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너를 기다리며 만주의 밤과 낮을 지새우며

너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노라

백파야 백파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너를 사랑하며 만주의 바람과 구름을 따라 너를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 노라

백파야 백파야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너를 따르며 만주의 적과 싸우며 너를 위하여 죽고 죽고 죽노라

이 시에서 백파란? 김학규 선생의 호칭입니다.

오광심 선생은 남편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시는 오광심 선생의 지하 연락 활동과 항일정신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입니다.

 

역사적 평가:

오광심 선생은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일제 강점기에 끊임없이 민족의 자주 와 해방을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그녀는 조선혁명군 사령부에서 복무하면서 지하 연락 활동에 종사하였으며, 유격대 및 한중 연합 항일 전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학규 선생의 보고서를 통째로 외워 만주로 가서 구술로 이를 보고하는 등 위험천만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시를 통해 항일 의지와 애국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오광심 선생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그녀의 용감하고 헌신적인 행보는 후세에 큰 영감과 자부심을 줍니다. 오광심 선생은 1976년 사망하였으며,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녀의 생애와 업적은 여러 작품과 문화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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