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는 낮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익숙한 길목,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던 주민센터 앞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한 분이 작은 턱 앞에서 멈춰 있었다.
불과 몇 센티미터—하지만 그분에게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도 함께 멈췄다. 내 안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작은 망설임들을 앞다투어 끄집어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할까?' 하는 인간적인 마음과 동시에, '괜히 나섰다가 부담스러워하시면 어쩌지?
버스 시간 늦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곧 돕겠지,
나만 아니면 돼.' 하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발은 땅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고, 머릿속은 수십 개의 핑계로 가득 찼다.
주저하는 내게 답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분을 지나쳤다.
누군가는 통화하며,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시선을 피했다.
마치 그분은 존재하지 않는 투명한 공기처럼, 그분의 곤경은 보이지 않는 풍경처럼 취급되었다.
그들 속에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 목울대가 조여왔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누군가의 절박함 앞에서 비겁하게 침묵했던 나 자신에 대한 씁쓸한 자각이었다.
마침내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그 턱을 넘을 수 있도록 선뜻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동시에 내 안에선 묘한 고통이 일었다.
내가 잃어버린 용기, 내가 망설인 그 몇 초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작은 턱을 넘은 건 휠체어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무심함과 마주하며 불편한 진실의 턱을 넘어야 했던, 나 자신이었다.
휠체어 앞의 작은 턱은 단순한 물리적 장애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 그림자였다.
보이지 않는 편견, 익숙한 시스템의 무심함, '괜찮겠지' 하는 우리의 타성.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그 턱 앞에서 망설였던 사람이거나, 아예 그 턱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었음을 인정했다.
그 불합리함은 비단 약자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도,
씁쓸한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은 턱이 우리 사회를 조용히 고발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겐 넘어야 할 매 순간의 장애라면…
우리는 무엇을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밤새도록 나의 잠 못 이루는 마음을 흔들었다.
그 밤, 우리는 익숙한 불합리 앞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번에 마주할 그 작은 턱 앞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선택이, 이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고 합리적인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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