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130년을 걸아가다( 경주에서 만난 신라의 꿈과 현실)
토함산으로 향하는 길
구불구불한 산길과 논밭 사이로 보이는 고분들 경주시내에서 불국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구불구불했어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논밭 사이로 보이는 작은 고분들, 여전히 발굴 중인 유적지들을 보며 '여기가 정말 천년 고도구나' 하는 실감이 났죠.
토함산 자락에 들어서자마자 공기부터 달라졌어요. 도심의 소란함이 점점 멀어지고, 대신 짙은 녹음과 새소리가 차를 감쌌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는 길, 벌써부터 설렘과 묘한 긴장감이 교차했어요.
첫 발걸음, 그리고 첫인상
불국사의 웅장한 일주문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는 순간, 잠시 걸음을 멈췄어요. 수학여행 때 왔던 기억과는 완전히 달랐죠.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불국사는 그때보다 훨씬 더 깊고 무거운 느낌이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일주문. "불국사"라고 쓰인 현판을 보며 생각했어요. 751년, 김대성이라는 한 사람의 꿈으로 시작된 이곳.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돌 한 돌 쌓아 올린 신라인들의 염원이 여전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구나, 하고요.
천년의 계단, 청운교와 백운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 드디어 마주한 청운교와 백운교. 사진으로만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웅장함이었어요. 아래쪽의 청운교 17계단, 위쪽의 백운교 16계단. 총 33계단이 상징하는 것은 불교의 33천이라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어요. 이 계단을 밟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1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올랐을까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절망하는 마음으로, 또 때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요.
각 계단의 돌 표면은 세월의 흔적으로 매끄러워져 있었어요. 무수한 발걸음이 만든 자연스러운 곡선.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구나 싶었습니다.
불국사 기본 정보
- 창건: 751년 (신라 경덕왕 10년)
- 창건자: 김대성
- 완성: 774년 (혜공왕 10년)
- 세계문화유산 지정: 1995년
- 주요 문화재: 다보탑(국보), 석가탑(국보), 청운교·백운교(국보), 연화교·칠보교(국보)
- 면적: 약 3만 3천 평
- 관람시간: 오전 7시 ~ 오후 6시 (계절별 차이 있음)
김대성, 한 사람의 꿈이 만든 기적
불국사를 이해하려면 김대성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당시 신라의 재상이었지만, 단순히 권력자가 아니었어요.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23년이라는 긴 세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얼마나 긴 시간인가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23년간 지속한다는 것. 그것도 개인의 신념과 의지로. 김대성의 이런 뚝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불국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보탑 - 화려함 속의 깊은 뜻
섬세하고 화려한 다보탑의 모습 대웅전 앞마당에 서니 드디어 그 유명한 두 탑이 눈에 들어왔어요. 먼저 다보탑. 10원짜리 동전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실물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다보탑 앞에 서니 묘한 감정이 밀려왔어요. 1400년 전 사람들이 만든 것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전쟁도, 세월도, 무수한 변화도 이것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요.
높이 10.4미터, 신라 석탑 중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가진 다보탑.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여래가 석가여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조화롭고 안정감이 있었어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흥미로웠어요. 탑의 각 부분마다 의미가 있고, 전체적으로는 불교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단순히 예쁜 탑이 아니라 신라인들의 철학과 신앙이 돌로 구현된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석가탑 - 완벽한 단순함의 미학
단순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의 석가탑 다보탑과 대조적인 석가탑. 정식 명칭은 '불국사 삼층석탑'이지만 모든 사람이 석가탑이라고 부르죠.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했어요. 석가여래를 상징하는 탑이기 때문입니다.
석가탑은 단순하고 완벽했어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깔끔함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느꼈죠. 높이 8.2미터, 신라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왔던 제가 이상하게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석가탑의 단순함이 주는 힘일까요? 아니면 1300년을 버텨온 돌의 무게감 때문일까요?
1966년 해체 복원 과정에서 탑 안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이라고 합니다. 8세기에 만들어진 경전이 20세기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 이것 또한 하나의 기적이 아닐까요?
대웅전과 극락전 - 신라 건축의 정수
불국사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연화교 칠보교 두 탑 뒤편의 대웅전.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 재건된 것이지만, 그 자리는 창건 당시부터 변하지 않았다고 해요. 130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님을 보며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아마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극락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어요. 청운교, 백운교와 비슷한 구조지만 조금 더 화려한 느낌이었죠. 극락정토로 향하는 길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아픈 역사, 그리고 재생
1593년, 임진왜란. 불국사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어요. 23년에 걸쳐 쌓은 김대성의 꿈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것이죠.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그 당시 이곳을 지키려 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지만 불국사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1604년부터 시작된 복원 작업.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끊임없이 보수하고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
현재 우리가 보는 불국사는 원래 모습 그대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어요. 끝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불국사는 그것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마다 다른 불국사
단풍으로 물든 가을 불국사의 모습 봄에는 벚꽃과 함께,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함께,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겨울에는 설경과 함께. 불국사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요.
제가 방문한 것은 초여름이었는데, 신록이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석가탑과 다보탑 주변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연과 인공물이 이렇게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구나 싶었죠.
가이드는 말했어요. "가을 단풍 시즌에 다시 오세요. 완전히 다른 불국사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럴 것 같았어요. 같은 공간이지만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불국사인 것 같습니다.
추천 포토존과 관람 팁
불국사 입구에서 바라본 청운교와 백운교 전경 꼭 찍어야 할 사진:
- 청운교·백운교 전체 모습 (입구에서)
- 석가탑과 다보탑이 함께 나오는 앵글 (대웅전 앞에서)
- 극락전에서 내려다본 전경
- 일주문과 함께 찍는 인증샷
관람 팁:
- 오전 일찍 가면 사람이 적어서 사진 찍기 좋아요.
- 가이드 투어를 들으면 훨씬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편한 신발 필수 (계단이 많아요).
- 석굴암과 함께 코스로 묶어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떠나며 드는 생각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김대성이 남긴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까요?
23년이라는 긴 시간을 하나의 목표에 바친 그의 의지력을 생각하면서, 저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았습니다.
불국사를 나서며 마음속에 남은 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어요. 인간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경외감이었고,
동시에 저 자신에게 던지는 조용한 질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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