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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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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하면 불국사, 첨성대, 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경주 가면 필수 볼거리 이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에도 불구 하고 첨성대에 대해 잘알지 못한다,

첨성대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알려진게 부족하고, 여려가지 학설에 논란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경주 첨성대 가기전 꼭한번 읽어보고 가면 어떨까?하는 마음에서 첨성대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 그러면 첨성대 논란 궁금 하신가요? 첨성대 여행을 한번 떠나 보기로 합시다

 

첨성대의 위치

첨성대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위치와 다르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경주 동쪽에 있는 월성 (月城)이라는 곳에 있었다. 월성은 신라 왕실의 별궁이자 천문관측소였다. 월성은 고려시대에 파괴되었고, 첨성대도 훼손되었다. 조선시대에 첨성대는 경주 서쪽에 있는 인왕산 (仁王山)으로 옮겨졌다. 인왕산은 신라 왕실의 무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인왕산에서 첨성대는 1909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의 위치는 경주 동쪽에 있는 운무동 (雲無洞)이라는 곳이다. 운무동은 신라 역사 과학관의 부지로, 첨성대를 비롯해 신라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시설과 조형물이 있다

 

첨성대를 경주 월성이라는곳에 설치한 이유

첨성대가 처음에 세워진 곳은 월성이라는 곳으로, 경주 동쪽에 있는 평지였다. 월성은 신라 왕실의 별궁이자 천문관측소였다. 월성은 고도가 낮고, 주변의 산맥과 건물들을 피해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월성은 신라 왕실과 가까운 곳이어서 천문관측의 결과를 왕에게 바로 보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월성은 천문관측에 적합한 곳이었고, 그곳에 첨성대를 건설한 이유이다. 첨성대가 평지에 건설된 이유는 천문관측에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첨성대의 역사적 배경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선덕여왕은 632년부터 647년까지 신라의 27대 왕인데, 신라 역사상 유일한 여성 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은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첨성대를 통해 하늘을 관측하고, 달력과 점술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선덕여왕은 첨성대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늘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첨성대의 역사적 의미

첨성대는 신라인들이 하늘을 알고자 했던 지혜와 선덕여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다. 첨성대는 과학과 예술,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문화유산이다. 첨성대는 신라의 과학과 문화의 발전을 증명하는 증거이자, 동아시아의 과학사에 빛나는 보물이다. 첨성대는 1962년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첨성대의 역사적 의의

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경주첨성대의 기능과 역할, 건축의 비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첨성대가 선덕여왕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물이라는 주장

이 주장은 첨성대가 신라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선덕여왕의 정치적 성공을 상징하며, 여왕의 이름인 선덕을 천상에 영원히 남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첨성대의 모양이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우주인 수미산과 닮았고, 높이가 10m 밖에 안 되며 오르기도 불편해 천문관측대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제기되었다. 이 주장은 선덕여왕이 신라 역사상 유일한 여성 왕인 점과, 신라가 불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한 점을 감안하면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주장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주장은 첨성대의 구조와 돌의 개수가 음력 1년 날 수, 28수 별자리, 12달과 24절기 등을 상징한다고 하고, 네모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길이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고대 문헌기록에서 첨성대 안을 통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 있고,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신라 역사기록에서 선덕여왕 시대에 천문관측의 양과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도 근거로 든다.

 

첨성대가 제단이라는 주장

첨성대가 제단이라는 주장은 첨성대가 신라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천문 관측보다는 점술과 관련된 곳이었다는 것이다.

정연식서울여대 교수는 첨성대는 나라의 앞날을 점치며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별을 보고 점치며 성묘를 했다고 하고, 김용석 전 경북대 교수는 첨성대에서 선덕여왕의 이름인 선덕을 천상에 영원히 남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영근 전 경북대 교수는 첨성대의 모양이 수미산과 닮았고, 수미산은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우주인 것으로, 불교와 관련된 의식을 행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첨성대의 보존 연구 발전방향

(1)첨성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연구와 조사를 강화한다. 첨성대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옮겨지고 훼손되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과 기능을 파악하고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첨성대의 역사와 구조, 기능, 의미 등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둘째, 첨성대의 과학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홍보한다. 첨성대는 신라의 과학과 문화의 발전을 증명하는 증거이자, 동아시아의 과학사에 빛나는 보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첨성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 따라서 첨성대의 과학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셋째, 첨성대를 통해 신라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고 교육하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첨성대는 신라역사과학관의 일부로 관리되고 있으며, 첨성대 주변에는 첨성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첨성대 공원에는 첨성대를 비롯해 신라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시설과 조형물이 있다. 이러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다양화하여,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휴식과 학습의 장이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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